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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광별/뚜벅이여행

경주 신라의 길을 찾아서 .2012

2012 경주 신라의 길을 찾아서.






도넛전문점에서 핫베이글+아메리카노를 뽑아들고 한참을 기다렸을까, 

신경주행 (부산행) 열차가왔고, 앉아서 한 입 베이글을 베어물자마자 내린 신경주역. 






광명역 천안아산역과 내부가 조금 비슷한것 같은 - 플랫폼. 

혼자 감상에 젖어 아 - 왠지 이쁘다 라고 생각하다, 늦을세라 버스정거장으로 향했다. 








신경주 역을 지나 경주 시내에 다다르니 기와집과 왕릉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옛 문화유산이 제일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인 경주는 온 몸으로 옛 문화를 느끼기엔 충분했다.

대구에서 경주가 차로 1시간 거리이니 먼 거리는 아니지만 확실히 달랐다. 

많은 역사적 수난이 있었지만 문화재들이 이렇게 잘 보존 되고 있다는 것에 한번 더 놀라웠다. 









경주역에 도착하자마자 하이브리드 버스를 타고 경주 불국사로 향했다. 

경주역 다음 간이역으로 불국역이 있는데, 불국역에서 불국사 까지 도보로 1시간, 버스로 10분 정도 걸린다. 

불국사 후문인 천왕문으로 들어서자 수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여기저기서 가이드 설명을 듣는 모습이 보였다. 










불국사는 서기 751년 신라 경덕왕 때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이 현세의 부모를 위해서 창건하기 시작하여 

서기 774년인 신라 혜공왕 때 완공하였으며, 건립 당시의 이름은 석불사였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린 불국, 이상적인 피안의 세계를 지상에 옮겨 놓은 것으로 

법화경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와 무량수경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및 

화엄경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불국사의 건축 구조를 살펴보면 크게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 하나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 범영루, 자경루, 다보탑과 석가탑, 무설전 등이 있는 구역이고 

다른 하나는 극락전을 중심으로 칠보교, 연화교, 안양문 등이 있는 구역이다. 


천왕문을 지나 불국사로 들어갔을 때에 보이는 불국사 전면의 장대한 석조구조는 창건당시인 8세기 유물이며, 

위의 목조건물은 소실되어 18세기에 중창한 것이며, 회랑은 1960년대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불국사의 조각 하나하나는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고 장엄하며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그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웅전 앞에는 국보 제 20호인 다보탑과 국보 제 21호인 석가탑이 있으며 

다보탑의 사자상은 여전히 한 마리로 늠름하게 앉아서 불국사를 지키고 있었다

. 그리고 2005년 12월 불국사와 석굴암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게 되었다. 
























불국사를 둘러보고 나와 국립경주박물관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경주의 꽃인 보문호와 경주 엑스포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음각화한 경주 타워도 구경하게 되었다. 











경주박물관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주간으로 일시적 무료개방을 하고 있었다. 

덕분에 가볍게 입장 할 수 있었다. 











우선 미술관을 먼저 둘러보았는데, 미술관을 들어서자 보인 것은 손이 잘려있는 ‘약사불’ 이었다. 

약사불은 통일신라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손을 따로 만들어 끼웠다고 한다. 

이 불상은 금동비로자나불 아미타불과 더불어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금동불로 불리기도 한다. 









이 외의 기타 부처상, 작은 토우들 , 작은 금동상들, 금속과 돌을 비롯한 각종 재질로 만든 물건에 문자를 새긴 금석문 자료, 


불교미술, 황룡사 자료실 등이 있어 신라의 전반적인 미술품들을 두루 볼 수 있었다. 







불국사의 미술관을 나와 안압지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안압지는 국립경주박물관 바로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데

, 많은 부분 소실되어 누각 2~3개가 전부이지만 경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안압지관에서는 안압지에서 발견된 3만여 점의 통일신라시대 문화재 중 300여점의 문화재를 주제별로 볼 수 있었다. 

특히 눈에 띄었던 것은 안압지 바닥에 있던 돌들이었는데, 예전엔 똑같은 문양에 똑같은 크기라 엄청난 손기술이라 여겼던 것이 

틀에 의해 찍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틀에 의해 찍혀졌어도 그 당시 기술이라면 어마어마한 기술인 것이다. 











돌의 윗면에만 문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옆면까지 문양이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 기술인가. 

그 문양은 안압지 주변에 널리 피어있는 연꽃문양이었다. 

문무왕 14년 (674년) 궁궐 안에 완공된 안압지는 임금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회의를 했던 장소로서 귀빈을 접대하기도 한 경치가 아름다운 연못이다. 

인공 호수와 정원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통일신라의 건축과 조경을 잘 알 수 있는 문화재이며, 당시 화려했던 신라 귀족 예술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본관인 고고관에서는 경주와 그 주변 일대에서 출토된 선사시대부터 신라 건국까지의 많은 유물들이 있었다. 

선사 시대의 돌도끼부터 한국사 강의에서 많이 강조되었던 주요 유물들, 그리고 신라의 금관까지 왠만한 유물들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고, 

활발했던 외국과의 무역을 보여주는 여러 보석과 옷,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고고관에서 기억에 남았던 곳은 대릉원에 있는 천마총의 제작과정을 비디오로 보여주는 곳이었는데 정말 대단하다!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신라의 무덤양식은 적석 목곽분으로 나무로 만든 대형 목곽에 시체를 넣은 관과 각종 부장품들을 넣고, 

위에 두껍게 돌을 쌓아 올리고, 다시 그 위에 흙을 덮은 형태로 대단히 정교하게 만들어 졌고, 

항상 궁금했던 대릉원의 연결된 두 개의 무덤에 관한 실마리도 풀 수 있게 되었다. 


하나의 무덤을 조금 잘라 옆에 무덤을 하나 더 만들었던 것이다. 


대신 신라의 무덤은 나무와 돌이 주를 이루어 무덤 속에 벽화를 것을 그려 넣지 못했는데, 

이것은 삼국 통일 이후에 고려와 백제의 영향을 받아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뀌면서 크기가 줄어들게 되고 

이를 이어 고려-조선의 왕릉으로 이어져 내려오게 된다고 한다. 












국립경주박물관 고고관에서 강조되었던 또 하나의 것은 ‘불’이었는데, 불로 인해 신라의 금동술이 발전했다고도 한다. 

이와 비슷한 예로 철의도시인 가야(김해박물관~)가 있는데 불이 우리 문화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의 마지막 작품으로 성덕 대왕 신종을 볼 수 있는데, 이 종은 봉덕사종, 에밀레종이라고도 불리며 

신라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8세기 후반(혜공왕 7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 종은 현재 남아있는 가장 큰 종일 뿐만 아니라, 종의 소리와 조각솜씨가 뛰어나고 아름다워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범종으로 꼽힌다. 











국립경주박물관을 나와 대릉원으로 향했다. 

작년 11월 신라의 달밤 165리(66km)걷기대회에서 불국사~박물관~안압지~첨성대~대릉원 모두 걸어 다니며 느꼈던 곳들이다.









대릉원에서는 국립경주박물관 고고관에서 VOD로 보았던 돌무지 덧널무덤(적석 목곽분)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대릉원 안의 천마총은 실제와 같이 복원되어 있었고, VOD와 달리 어마어마한 크기에 한번더 놀라게 되었다. 

신라의 무덤들은 상류층의 무덤일수록 크기가 크다고 한다. 왕의 무덤이라 큰 나무 높이와 맞먹을 정도로 컸었나보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고고관에서 보았던 유물들의 복사본이 천마총에서 전시되고 있었다. 그렇게 고분군을 지나 첨성대로 향했다. 










국보 제 31호인 첨성대는 신라시대에 건립된 천문대이며 신라 선덕여왕(재위632~647)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된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높이는 9.17m로 사진으로 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웅장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소정의 입장료를 내면 첨성대 가까이까지 갈 수 있는데, 20m밖에서 보는 첨성대와 2m앞에서 보는 첨성대는 정말 많이 달랐다. 

‘그 작은곳에서 어떻게 천문관측을 하겠나-‘ 싶었던 천문대에는 여러명의 장정들이 들어가도 될 정도로 컷기 때문이다











첨성대 옆의 첨성대쉼터에는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첨성대의 구조를 공부할 수 있었다. 

첨성대를 만든 돌의 숫자는 365개 안팎이라 1년=365일을 의미 하고 있고, 

첨성대의 몸통이 27단인 것은 첨성대를 쌓은 선덕여왕이 27대왕이라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여기서 꼭대기의 정(井)자 돌과 단을 합하면 28개의 단이 되는데 이는 28수라는 별자리와 관련되어 있고, 

2층의 기단부와 함치면 29단,30단이 되는데 이것은 음력 한달의 날 수와 같다.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 아래로 나누면 각 12단으로 1년의 12달을 의미하며, 모두 합하면 24단으로 24절기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첨성대는 당시 국가 경제력을 높일 수 있었던 바탕이기도 한 것 같다. 













첨성대를 지나 신라 김씨왕조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계림도 둘러보고, 어쩌다가 석빙고도 보게 되었다. 

사실 석빙고가 경주에 있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이것을 둘러 싸고 있는 월성은 이제야 복구를 시작한다고 한다. 

사실 성이라 하면 성곽을 생각했는데, 월성은 성곽이라기 보다는 산과 같은 생김새라 갸우뚱하기도 했었다. 

월성을 나와, 해가 산위에 걸리고.. 안압지에 들어섰다. 










안압지는 월성의 북동쪽에 인접하여 있다. 4차선 도로만 건너면 바로 나오니, 

월성에서 불과 2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안압지 입구가 있다고 보면 된다. 


안압지는 임금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거나 회의를 했던 장소로 잘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사진으로 보이는 3개의 누각만이 안압지를 지키고 있다. 












안압지도 얼른 불국사처럼 복원해 옛 느낌을 얼른 다시 느껴보고 싶다. 

이번 경주 문화탐방은 지금까지 왔었던 그 어떤 여행보다 뜻깊은 여행이 되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관찰하게 되었고, 그저 ‘그랬구나-’ 했던 것들이 

‘아 이렇게 되어서 그렇구나-’ 라고 바뀔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2012.04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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